잃어버린 바를 찾는 열심과되찾은 기쁨으로의 초대
작성자 관리자 | 작성일26-05-31 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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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무언가를 잃어버렸을 때 마음의 허전함을 경험합니다. 정든 물건이나 오래된 단골 식당이 갑작스럽게 사라지면 아쉽고 시간이 흘러 돌아보면 문득 그립기도 합니다. 예수님은 그런 우리에게 묻습니다. “물건 하나를 잃어도 이토록 아쉬운데, 잃어버린 자를 향한 하나님의 마음은 어떠하겠느냐?”
누가복음 15장의 세 비유는 결론이 같습니다. 잃어버린 양과 드라크마, 그리고 아들을 찾았을 때 주인은 어김없이 이웃을 불러 기쁨을 나눕니다. 이는 하나님의 사랑이 단지 ‘찾아냄’에서 멈추지 않고, 그 기쁨에 모두가 동참하기를 원하신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목자의 수고와 여인의 열심, 그리고 아들을 향해 달려나가는 아버지의 모습은 결국 ‘함께 기뻐할 일’라는 하나의 목적지를 향합니다.
이 기쁨의 절정은 집 나간 아들을 맞이하는 아버지의 모습에서 더욱 드러납니다. 둘째 아들은 “품꾼의 하나로 써달라”는 염치없는 고백을 품고 돌아오지만, 아버지는 “아직도 거리가 먼데” 그를 발견하고 달려 갑니다. 명예와 체면을 지금보다 더 중시했던 고대 근동 사회에서 이런 모습은 상상하기 힘든 파격입니다. 아버지는 자신의 명예보다 아들의 회복이 더 시급했습니다. 비난받아 마땅한 자에게 제일 좋은 옷을 입히고 가락지를 끼우는 일로, 그리고 송아지를 잡아 이웃과 기쁨의 잔치를 벌이는 이 ‘거룩한 낭비’가 바로 우리가 입은 은혜의 본질입니다.
세번째 비유는 잔치 밖에서 불평하는 큰아들의 모습으로 이어집니다. 그는 집 안에 있었으나 아버지의 이 기쁨에 공감하지 못하는 또 다른 의미의 ‘길 잃은 자’였습니다. 아버지는 그에게도 간곡히 권하십니다. “이 네 동생은 죽었다가 살아났으니 우리가 즐거워하는 것이 마땅하다.” 만약 우리의 신앙이 기쁨보다 의무가 되고, 사랑보다 손익계산이 앞서 있다면, 우리 역시 아버지의 마음을 잃어버린 채 잔치 구역 밖에서 서성이고 있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은 지금도 ‘잃어버린 자를 찾으시는 열심’으로, 그리고 ‘찾은 자를 향한 터져 나오는 기쁨’으로 우리를 초청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정성된 ‘준비 완료’를 기다리지 않습니다. 우리가 스스로 충분히 깨끗해지는 노력을 한 뒤에야 그 노력을 보며 괜찮다며 다가오시는 분이 아닙니다. 오늘 우리가 보일 응답은 단순하고 즉각적입니다. 둘째 아들처럼 그 품으로 돌아가고, 큰아들처럼 그 잔치 안으로 기꺼이 걸어 들어와 아버지의 기쁨에 동참하는 것입니다.
죽었다가 살아난 우리를 보며 기뻐하시는 아버지의 품에서, ‘회복을 넘어 생명을 누리는 복된 삶’이 되시길 소망합니다.
제34-12호 2026.0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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