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낭비'라 부를 때, 주님은 ‘기억’이라 부르십니다
작성자 관리자 | 작성일26-05-31 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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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에게 줄 선물을 준비할 때, 정성을 담기 위한 포장지와 카드는 어쩌면 금방 뜯겨 버려질 불필요한 ‘낭비’로 보입니다. 하지만 그 낭비처럼 보이는 정성이 담길 때, 비로소 물건은 마음을 담은 ‘선물’이 됩니다.
요한복음 12장에는 그런 압도적인 정성이 드려진 현장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죽은 나사로를 살리신 예수님을 위한 베다니 잔치에서, 마리아는 노동자의 일 년 치 임금에 해당하는 ‘순전한 나드 한 근’을 깨뜨려 예수님의 발에 쏟아붓습니다. 향유 냄새가 집안 가득 진동하는 순간, 제자들은 분통을 터뜨렸습니다. “이게 무슨 허비냐!”
일반적인 시각에서 제자들의 비판은 합리적입니다. 삼백 데나리온을 팔아 가난한 자를 돕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고 나아가 도덕적인 선택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마리아는 그 향유의 무게와 값을 너무나 잘 ‘알면서도’ 전부를, 예수님을 섬기는 데 사용합니다. 그리스도이시고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의 존귀하심을 생각해 볼 때에 그 가치가 세상의 그 무엇보다 크다는 것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이 팽팽한 대립 속에서 예수님은 놀라운 해석을 내놓으십니다. “그를 가만 두어 나의 장례할 날을 위하여 그것을 간직하게 하라.” 제자들이 ‘낭비’라고 불렀을 때, 주님은 당신의 죽음을 준비하는 ‘하나님의 위대한 구원 계획’에 속한 것이라고 여인의 행위를 명명하셨습니다. 세상이 손실을 계산할 때, 주님은 그 행위에 ‘거룩한 헌신’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신 것입니다.
헌신은 내 손에서 완성되지 않습니다. 주님이 받으시고 그 가치에 이름을 붙여주실 때 비로소 완성됩니다. 우리의 작은 정성도 주님이 받으시고 의미를 부여하실 때 영원한 가치를 지니게 됩니다.
주님은 우리가 옥합을 깨뜨려야 할 ‘결정적인 순간’으로 초대하십니다. 그것은 물질일 수도, 누군가를 향해 흘리는 회개의 눈물이나, 일상을 멈추고 드리는 시간일 수도 있습니다. 세상이 무어라 부르든 상관없습니다. 주님이 우리의 헌신에 ‘사랑’이라 이름 붙여주시고, “복음이 전파되는 곳마다 기억되리라” 축복하신다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우리가
오늘 깨뜨린 그 옥합의
향기가 삶의 자리마다 가득하기를, 그리하여
‘회복을
넘어 생명의 복음을 선포하는 아름다운 삶’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이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서는 이 여자가 행한 일도 말하여
그를 기억하리라 하시니라” (마태복음 26:13)
제34-13호 2026.0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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