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물은 막아도, 하나님 백성의 인생을 완전히 막을 수 없습니다.
작성자 관리자 | 작성일26-05-31 16:31
관련링크
본문
현대 전쟁에서 전력망이나 수도망 같은 기반 시설을 고의로 파괴한다면 그 피해는 상상을 초월할 것입니다. 특히 물이 끊긴 곳에서 가장 먼저 고통받는 이는 아이들입니다. 이런 공격은 사람들의 생존권과 미래를 통째로 끊어버리겠다는 비정한 적대 행위입니다. 창세기 26장에서 블레셋 사람들이 이삭의 우물을 흙으로 메운 사건도 이와 같습니다. 광야에서 우물을 막는다는 것은 이삭 가문의 현재뿐 아니라, 그 물을 마시고 자랄 어린 자녀들의 미래까지 박탈하겠다는 선전포고였습니다.
그랄 땅의 이삭은 백 배의 결실을 얻었지만, 그 복을 시기한 이들에게 생명줄 같은 우물을 빼앗기는 절망을 맞닥뜨립니다. 하지만 이삭은 다투는 대신 아버지가 팠던 옛 우물을 찾아 다시 파고, 그곳을 아버지가 부르던 이름 그대로 부릅니다. 이는 아브라함에게 흐르던 하나님의 약속을 ‘내 삶의 약속’으로 받아들이는 전수된 신앙의 한 모습입니다. 계속되는 방해 속에서도 이삭은 하나님을 원망하거나 그들과 싸우지 않습니다. 또한 다시 우물 파기도 멈추지 않았습니다. 우물이 막히는 상황에서도 복의 원천이 우물이 아닌 하나님이심을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결국 하나님은 다툼이 더 이상 없는 우물 ‘르호봇’의 지경을 허락하셨습니다. 예배(제단)와 삶(장막), 생존(우물)이 하나로 어우러진 신앙의 모습을 이삭은 힘든 삶의 여정 중에도 이루어 냈습니다.
우리 자녀들이 살아갈 세상은 돈과 명예와 성적이 최고라는 그릇된 세상 가치관과 비교의식이라는 이런 저런 흙덩이를 재료삼아 자녀의 신앙의 숨통을 조여올 것입니다. 힘들어할 자녀들을 위해 부모가 해 줄 수 있는 가장 위대한 일은 스스로 우물을 파는 ‘믿음의 본’을 보이는 것입니다. 부모가 고난 속에서도 꿋꿋이 지켜낸 예배와 기도의 자리는, 훗날 자녀가 인생의 기근을 만났을 때 그를 다시 살려낼 귀한 우물터가 될 것입니다. 자녀 또한 부모가 인생 곳곳에서 파 내려간 이러한 자국을 신앙의 유산으로 삼아 소중히 여길 때, ‘나의 하나님’이 내 부모가 만난 동일한 분을 고백하며 한 자리에서 함께 찬송하게 될 것입니다.
세상이 어떤 방식으로 우리가 판 우물을 덮으려 해도 하나님 백성에게 예비하신 복은 결코 막을 수 없습니다. 막힌 우물 앞에서 낙심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결국 우리 가정을 넓히시고 감사와 찬양의 자리로 이끄실 것입니다. 가정의 달, 부모는 기도의 우물을 파고 자녀는 그 은혜를 이어받아 하늘의 평강이 가득한 믿음의 가정을 일구어 가시기를 소망합니다.
“이삭이 그 곳에 제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거기 장막을 쳤더니
이삭의 종들이 거기서도 우물을 팠더라”
(창세기 26:25)
제34-19호 2026.05.10.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