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생명이 천하보다: 이태원 참사 유감
작성자 이광우 | 작성일22-11-01 1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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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생명이 천하보다]
누군가의 다 키운 자식 150여 명이 꿈을 채 펼쳐보기도 전에 그들의 ‘놀이마당’에서 비참하게 죽었다. 선진국이라는 21세기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에서 사람이 사람에게 밟혀 죽는 지극히 야만적인 일이 벌어진 것, 그 안타까움과 비참함과 부끄러움은 말로 설명할 길이 없다. 이런 비극 앞에서 또 몇 명 대~단한 믿음을 지닌 목사들(기독교인들)이 촐싹대며 “서양 귀신을 따르다 그랬다”느니 “하나님의 심판”이니 하는 헛소리를 지껄여 기독교를 또 다시 ‘혐오의 대상’으로 한껏 부각시키는 모양이다. 세월호 사건 때도 명성교회 김삼환 목사가 헛소리를 지껄여 뭇사람의 공분(公憤)을 사며 기독교를 욕 먹이더니 이번에도 어김없이 또 그 대~단한 헛소리들이 터져 나왔다. 이런 헛소리를 들을 때마다 같은 기독교인으로서 우리가 믿는 ‘복음’은 무엇이며 우리가 믿는 ‘예수님’은 또 누구이며 그분의 나라 곧 ‘하나님 나라’의 본질은 무엇인지를 정말 부끄러운 마음으로 다시 생각하게 된다.
세월호 침몰 참사 후 여러 해가 지났지만 아직까지 진실은 밝혀진 바가 전혀 없고 그 일에 대해 책임 지는 사람 또한 단 한 명도 없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세월호 뱃지를 달고 다닌다. 언젠가 노회 정기회에 참석하면서 세월호 뱃지를 달고 갔더니 어느 젊은 목사가 나에게 “아직도 그것을 차고 다니느냐”며 힐난조로 물었다. 남이야 빤쓰를 뒤집어 입든 바지를 거꾸로 입든 무슨 상관이랴마는 그 젊은 목사의 싸가지 없는 말과 태도가 몹시 불쾌했다. 하여 그 목사를 불러 조용히 화장실 뒤켠으로 데리고 갔다. 잔뜩 긴장해서 따라온 그 자에게 물었다. “목사님, 당신의 자식이 세월호에서 죽었더라도 함부로 그런 말을 할 수 있습니까?” 잠시 우물쭈물하다가 고개를 푹 숙이고 나에게 “미안합니다”라고 답을 했다. 내가 말했다. “나에게 미안할 것은 없고, 희생자와 유가족들에게, 그리고 무엇보다도 당신이 목사라면 당신이 믿는 하나님께 마음을 다해 용서를 구하시오.” 공감 능력이 쥐털만큼도 없는 자들이 목사라고, 교회 지도자라고 나대는 현실이 오늘 한국 기독교의 현주소다. 그 덕에 오늘 우리는 우주의 왕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한없이 초라하게 만들며 ‘개독교’라는 낯뜨거운 욕설을 끊임없이 자청(自請)하여 전도와 선교의 문을 제 손으로 막는다.
알려지지 않았거나 기념 축일이 별도로 정해지지 않은 천주교의 ‘성인들(Saints)’을 한꺼번에 기념하는 날이 천주교의 ‘만성절’이다. 천주교의 ‘만성절’ 전날(All Hallows Evening> Hallows E’en> Halloween) 온갖 귀신들이 출몰한다 하여 귀신 떼를 쫓아내기 위해 문밖에 험악한 얼굴 모습으로 조각한 호박등을 켜놓는 행사를 ‘할로윈(Halloween)’이라 한다. 아일랜드 켈트 족의 ‘샤메인’ 축제가 그 뿌리라는 견해도 있다. 과거 우리 민족이 동짓날에 붉은 팥죽을 쑤어 문밖에 뿌림으로써 귀신을 쫓아낸다고 했던 것과 엇비슷한 미신 행사다. 유럽과 미국에서 떠들썩하던 이 할로윈 축제가 몇 년 전부터 우리나라에도 들어왔다. ‘빼빼로 데이’, ‘발렌타인 데이’와 마찬가지로 장사꾼들의 얄팍한 상술(商術)에서 비롯된 잡다한 행사가 오늘날 우리 젊은이들의 입맛을 여러모로 자극한 것은 사실이다.
예전에 설교하기 위해 LA 세리토스 교회를 방문하는 길에 그 교회 교우들의 안내로 유니버설 스튜디오를 방문한 적 있다. 거기 지하철 세트장에서 모형지하철에 탑승하여 약 30초 정도 진도 7의 지진을 체험해 보았다. 체험이 시작되면서 그 큰 지하철 객차가 마치 작은 성냥곽이 춤추듯이 좌우로 사정없이 흔들리자, 공수특전단 시절 낙하하기 위해 탑승했던 비행기의 롤링을 숱하게 경험했음에도 그리고 명백히 체험행사임에도 순간적으로 ‘아 이러다 죽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1755년 11월 1일 토요일 만성절에 포르투갈 수도에서 리스본 대지진이 일어났다. 기독교인들이 성당에 모여 미사를 드리던 시각 리스본에 5분 동안(아주 긴 시간이다) 진도 8.5~9의 지진이 발생했다. 40분 뒤 일어난 대규모 해일(쓰나미)로 리스본 시민 20만 가운데 약 10만 명이 사망했다. 이 참사를 겪으면서 사람들은 이 엄청난 비극과 고통의 이유를 묻기 시작했다. 기독교의 ‘인과응보론’이나 ‘신정론’으로는 도무지 답을 하기 어려운 참혹한 상황에서 당시 교회는 이 사건을 어김없이 ‘하나님의 징벌’로 해석하며 대~단한 믿음을 세상에 과시(?)했다. 교회의 이런 대답은 뭇 사람을 분노케 했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시 리스본의 창녀촌만은 피해를 입지 않고 아주 멀쩡했기 때문이다. 기독교 역사상 리스본 대지진이 일어났던 바로 이 시점부터 기독교의 ‘하나님’이 당시 눈부시게 발달하기 시작했던 ‘과학’에게 왕좌를 넘겨주게 되었다. 신학과 과학의 갈등은 바로 이 시점부터 본격화해서 오늘에 이르렀다고 보면 된다.
빌라도가 어떤 갈릴리 사람들의 피를 저희의 제물에 섞어 제사를 드렸다(눅 13:1~5). 이번 이태원 참사를 바라보는 일부 대~단한 믿음을 지닌 같잖은 목사들처럼 당시 사람들은 ‘갈릴리 사람들이 죄가 많아서’ 그런 일을 당했을 것이라 생각하며 이 일을 예수님께 알렸다. 뜻밖에도 예수님은 어느 누구랄 것없이 모든 사람이 다 하나님 앞에 회개해야만 한다고 말씀하셨다. 실로암 망대가 무너져 거기 치어 죽은 18명이 죄가 더 많아서 죽은 것은 아니라는 말씀도 덧붙이셨다. 우리가 믿는 예수님은 유일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시다. 생명의 주인이신 분이 죄로 죽은 우리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 자신의 생명을 십자가에 내어 주셨다. 그 생명의 은총을 거저 입은 사람이 신자다. 그 신자 가운데서 장로도 집사도 선교사도 목사도 나온다. 그처럼 가없는 은총을 입은 기독교 지도자라는 사람들이, 교회 안에서조차 소중한 동역자들을 거침없이 차별하는 쓰레기 같은 영성 탓에, 허망하게 사라져버린 젊은 생명에 대한 감각이 전혀 없고, 공감 능력이 제로에 가깝게 되어 그처럼 대~단한 막말을 입으로 배설하는 것이다. 그처럼 천박한 자들이 이끄는 한 이 땅 기독교와 교회의 미래는 아예 없다고 봐야 한다. 세월호 참사, 수많은 비정규직 젊은 노동자들의 숱한 비보에 뒤이어 이태원 참사로 ‘다 키운 자식을 먼저 떠나보낸 수많은 어버이들의 피눈물’에 가슴이 무너져 정말 숨이 막힌다. 한 생명이 천하보다 귀한 것이기에…
아, 다 키운 자식을 가슴에 묻은 부모들이,
살았어도 죽은 것만 못한 이 세상을 하루하루 어찌 살아갈꼬.
아이고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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