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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양칼럼

‘마하나임’과 같은 이름보다 더 중요한 것

작성자 조근호 | 작성일26-08-23 1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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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유독 귀에 와닿고 가슴을 뛰게 하는 표현들이 있습니다. 히브리어로는 할렐루야(하나님을 찬양하라), 벧엘(하나님의 집), 에벤에셀(도움의 돌), 엔학고레(부르짖는 자의 샘)가 있고, 헬라어로는 ‘은혜’를 뜻하는 “카리스”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라는마라나타” 같은 소위 거룩한 단어입니다. 이외에도 더 있지요. 우리는 이러한 신앙적 단어를 가지고 찬양대나 찬양팀, 기독교 동아리, 기독교 모임의 이름으로 즐겨 사용하곤 합니다.


32장에 등장하는 마하나임(Mahanaim)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보통 ‘마하나임’을 나를 둘러싸고 보호하는 ‘하나님의 강력한 군대’나 든든한 지원군의 이미지로 떠올리며 사모합니다. 실제로 야곱은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에서 예상치 못하게 하나님의 사자들을 맞닥뜨렸고, 그 거대한 진영을 보며 그 땅 이름을 ‘마하나임(두 진영)’이라 지었습니다. 내 삶의 진영 바로 곁에 하나님의 진영이 나란히 서 있음을 눈으로 똑똑히 확인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정작 형 에서가 400명의 장정을 이끌고 온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야곱의 반응은 어떠했습니까? 하나님의 군대를 목도했던 감격은 온데간데없이, 그는 극심한 두려움에 사로잡혀 자기가 평소에 살아왔던 본능적인 방식대로 자기 무리를 ‘두 진영(두 떼)’으로 쪼개기 바빴습니다. 이것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중요한 영적 사실을 일깨워 줍니다. 신앙의 진가는 거룩하고 근사한 마하나임 같은 이름을 아는 데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현실의 거대한 두려움 앞에서 ‘그 두려움을 안고 어디로 나아가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야곱이 위대한 신앙을 보인 지점은 자기 꾀로 두 떼를 나누며 피해를 최소화하고자 했던 그 자리가 아닙니다. 자신의 연약함을 인정하고, “나를 건져내시옵소서”라며 하나님이 친히 주셨던 언약의 말씀과 성품을 붙들고 엎드린 ‘기도의 자리’였습니다. 그는 자격 없는 자신에게 주신 약속만을 의지하여 부르짖었고, 기도한 후에는 화해를 위해 550마리의 예물을 나누어 앞서 보내며 최선의 정성을 다했습니다. 그리고 결과는 온전히 하나님의 손에 맡겨드렸습니다.


인생의 위기와 두려움 속에서, 단순히 은혜로운 단어를 외치거나 혹은 나는 괜찮을 거야라는 자기 확신에만 머물지 맙시다. 우리가 붙들어야 할 것은 멋진 신앙의 어휘 혹은 자기 최면이 아니라, ‘지금도 살아 계셔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신실하신 약속’입니다. 두려움을 안고 기도의 자리로 나아가 하나님의 약속을 붙드는 당신의 백성들에게, 마하나임의 하나님은 오늘 우리의 가장 견고한 진영이 되어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이여 주의 인자하심(헤세드)이 어찌 그리 보배로우신지요 사람들이 주의 날개 그늘 아래에 피하나이다”(36:7)


34-34    2026.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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