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거룩한 문화를 창조하는 교회

    Creating a Holy Culture

목양칼럼

얍복 나루의 밤, 브니엘의 아침

작성자 조근호 | 작성일26-08-30 15:31

본문

대학 시절 연합수련회에서 큰 은혜를 경험한 후, 하나님 아버지의 깊은 사랑을 잊지 않으려 안쪽에 은혜의 메시지를 새긴 은반지를 끼고 다녔습니다. 그 반지를 만지며 보며 ‘아, 나는 하나님의 사랑받는 사람이야! 나는 그 사랑으로 사는 존재야!’ 하고 때로는 위로를 얻고 때로는 하늘에 속한 정체성을 되새기곤 했습니다.


20년만에 귀향하는 과정에서 야곱 역시 (아마도) 평생 몸에 지니고 살아가야 할 특별한 ‘은혜의 흔적’을 얻습니다. 형 에서가 400명 장정을 데리고 다가온다는 소식에 두려움에 사로잡힌 야곱은, 가용할 수 있는 모든 수단과 기도를 마친 후, 얍복 나루를 기점으로 가족과 소유를 앞서 보내고 홀로 남습니다. 그 밤, 사람의 모습을 한 존재가 야곱을 찾아와 밤새 씨름을 했고 결국 야곱의 허벅지 관절을 쳐서 고꾸라뜨립니다.


관절이 어긋난 고통 속에서도 야곱은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라며 상대방의 축복을 끝까지 요구합니다. 하나님은 그에게 ‘이스라엘’이라는 새 이름을 주십니다. 이 이름을 받은 야곱의 승리는 하나님을 제압해서 이긴 것이 아닙니다. 모든 힘과 지략이 꺾인 자리에서도 하나님을 놓지 않아 얻게 된 결과였습니다.

 

새로운 아침을 맞이하며 간밤의 사건을 묵상하던 야곱은 그곳 지명을 ‘브니엘(하나님의 얼굴)’이라 이름 붙입니다. 사백 명을 이끌고 오는 형 에서의 얼굴이 가장 두려웠던 야곱이었지만, 그보다 훨씬 크신 하나님의 얼굴을 먼저 대면하고 살아남았을 때, 자신의 생사와 미래를 결정짓는 진짜 주인이 누구인지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얍복의 밤’을 지나 브니엘을 떠날 때 해가 돋았고, 야곱은 절뚝거렸습니다. 하지만 그 절뚝거림은 패배를 의미하는게  아니었습니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내 힘이 아닌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났다”는 사실을 야곱에게 일깨워 주는 영적 훈장이었습니다.


우리 삶에도 내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막다른 ‘얍복의 밤’이 찾아옵니다. 하지만 그 자리는 내 인생이 끝나는 자리가 아니라, 하나님이 나를 ‘이스라엘’로 새롭게 빚으시는 현장입니다. 우리 삶에 남은 아픔의 흔적은 주님이 나를 살려내신 은혜의 증거입니다. 완벽해서가 아니라, 나를 먼저 찾아오시고 붙드시는 하나님의 신실한 약속이 있기에 오늘 하루도 담대히 희망을 향해 발걸음을 내딛기를 소망합니다.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고후 12:9)


34-35호    2026.08.30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